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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간] 자치통감 21~24 (당시대 Ⅱ~Ⅴ)
작성자

관리자 (ip:) 조회수 :1137

작성일 2009-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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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짧은 전성기에 이어 도래한 갈등과 분열의 시대


자치통감 완간 대장정에서 이번에는 당시대 8책 중 지난 1월의 당시대Ⅰ에 이어 당Ⅱ, Ⅲ, Ⅳ, Ⅴ가 나왔다.

이들 책은 통일지향적인 중앙정부의 끊임없는 통일지향적인 노력과 동시에 내부적으로도 끊임없이 이에 반발하는 장강과 산동지역의 대결이라는 분열지향적인 측면을 동시에 찾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대단히 유익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출간 된 《자치통감》 21, 22, 23, 24(당Ⅱ, Ⅲ, Ⅳ, Ⅴ)는 시대적으로는 당 태종 만년에서부터 그 아들인 고종과 측천무후, 그리고 현종과 그 후의 숙종, 대종, 덕종까지를 아우르는, 즉 637년부터 794년까지 157년간의 역사를 담고 있다. 당 300년의 역사에서 절반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현무문의 사건을 거치면서 형과 동생을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당 태종 이세민은, 보통의 동양사에서 왕조의 모범으로 삼으려 한, 소위‘정관의 치(貞觀之治)’라 일컬어지는 부흥기를 연다. 안으로는 중앙집권제를 확립하고, 밖으로는 영토를 확장하는 한편 균전제(均田制), 조용조법(租庸調法), 부병제, 과거제의 실시로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 또한 부흥되었던 것이다.


그런 태종은 만년인 645년에 1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 원정에 나선다. 고구려가 당나라에 공물을 바치고 입조하는 것을 막고 있으므로 도와달라는 신라의 요청을 받고서 고구려의 연개소문(《자치통감》에서는 천개소문으로 기록)을 벌한다는 구실이었다.


그러나 태종의 이 1차 고구려원정은 안시성 전투에서 전과를 올리지 못한데다가 마침 추위와 굶주림으로 인해 실패한다. 이후 태종은 계속하여 고구려 원정의 뜻을 굽히지 않고 실행하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고 쉰한 살의 나이로 죽음으로써 고구려 원정은 중지된다.  


이후 당나라는 황태자 이치(李治)가 고종으로 즉위하였으나 궁녀 출신 측천무후(則天武后)가 황후가 되면서 모든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그러다 측천무후는 690년에 예순일곱의 나이로 황제 자리에 오르는 무주혁명(武周革命)을 일으킨다.  


이어 나당 연합군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등 수 양제와 당 태종이 가졌던 한반도로의 진출을 꾀하게 되는데, 결국 이 원정을 통해 국력 소모가 심해져서 결국 당은 고구려 침입 이후 경제난과 혼란이 빠지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구 귀족에 대한 냉혹한 숙청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등 강력한 통치를 일삼던 측천무후의 반세기에 걸친 통치도 측천무후의 노령에 따른 병으로 인해 힘을 쓰지 못하게 된다. 결국 재상인 장간지(張柬之)의 쿠데타로 측천무후는 황제 자리에서 퇴위하고 측천무후에 의해 황제 자리에서 물러났던 중종이 복위한다. 그러나 제2의 측천무후를 꿈꾸던 위황후는 측근들을 시켜 독이 든 만두를 먹여 중종을 시해한다.


이후 위황후 일족들의 전횡에 불만을 품고 있던 이륭기(李隆基)가 쿠데타를 일으켜 위씨 일파를 토벌하고 즉위한다. 이륭기가 바로‘정관의 치’를 이어 당의 정치와 문화를 훌륭하게 꽃피운‘개원의 치(開元之治)’를 이룬‘현종’이다.  


그러나 현종의 정치도 재위기간이 길어지고 재정이 풍부해지자 점차 부패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때에 현종은 사랑하던 무혜비(武惠妃)를 잃고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며느리(열여덟 번째 아들인 壽王  李瑁의 부인)인 양귀비(楊貴妃)에 빠진다. 정치는 이림보(李林甫)에 맡겨 뒷전으로 미뤄놓고 현종은 양귀비와의 유흥에 나날을 보내게 되는데, 이로 인해 당 왕조는 쇠퇴일로를 걷게 된다. 그런 가운데 양귀비의 육촌오빠인 양국충(楊國忠)이 권력을 얻어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하였는데, 이를 보다 못한 안록산(安祿山)이 755년 반란을 일으킨다. 또한 안록산의 부장이었던 사사명(史思明)이 758년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데 763년에 모두 평정되지만 국력은 결정적으로 쇠퇴해 갔다. 이후 정치 상황은 결국 내우외환에 시달리며 황제가 자주 몽진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렇듯 이때는 당의 짧은 전성기를 거쳐서 끊임없이 갈등과 분열을 하는 역사가 전개되는 모습이 보이는 시기이고, 동시에 동아시아의 재편이 꿈틀대는 시기여서 동북으로는 발해의 등장과 돌궐세력과 토번세력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거시적으로 동아시아사의 변화를 보여주며, 종전에 당(唐)이 근 300년간 동아시아를 지배하였다는 막연한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왕조가 290년간 존재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지배력의 범위는 그다지 크지 않았으며, 무수한 세력이 부침한 사실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막연히 당 중심의 동아시아사라는 동아시아사관을 재고해 볼 수 있는 생생한 자료라고 하겠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당태종이 등장한 이후 고종대까지를 당의 전성기라고 한다면, 그 기간은 아무리 길게 잡아야 100년 정도이며, 그 나머지는 각 지역별로 군사세력이 존재하여 명목상으로는 당 왕조의 지배하에 놓여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중앙권력이나 명령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분열의 시기로 들어갔으며, 이와 아울러 당이 멸망시킨 고구려의 옛 터전에는 발해가 등장하는 등 당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사가 종전에는 끊임없이 통일 지향적이라는 생각을 가져 왔지만 오히려 끊임  없이 분열 지향적이라는 말도 할 수 있다. 따라서 거대한 왕조가 선다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며, 지역적 특성에 따라서 분열 지향적으로 역사는 진행되고 있다. 만리장성 밖의 북방민족을 제외하고도 만리장성 이남에서도 산동과 산서, 강북과 강남의 분열이 눈에 띤다. 이를 통하여 이번에 출간된 당시대 편은 동아시아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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